onDec 13, 2013
어린 왕자
21
"바로 그 때 여우가 나타났습니다.
“안녕?”
울고 있는 어린 왕자에게 여우가 먼저 말을 걸었습니다.
“안녕!"
어린 왕자가 공손하게 대답을 하면서 뒤를 돌아다보았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여기야. 사과나무 밑에........”
아까의 목소리가 사과나무 쪽에서 들렸습니다.
“넌 누구니? 참 예쁘구나!”
어린 왕자가 반갑게 말했습니다.
“난 여우야.”
"이리 와서 나와 놀지 않겠니? 난 지금 너무 쓸쓸하단다."
"하지만 나는 너와 함께 놀 수가 없어. 난 아직 길들여지지 않았거든."
어린 왕자는 여우의 말을 이해 할 수 없었습니다.
“길들여지다니, 그게 무슨 말이니?”
“너는 이 곳에 사는 아이가 아니로구나. 이 곳엔 무엇을 찾으러 왔니?”
어린 왕자의 물음에는 대답을 안 하고 여우가 물었습니다.
“난 사람들을 찾고 있어. 그런데 길들여지는 게 무슨 뜻이니?”
“사람들은 총을 가지고 사냥을 하지. 그건 아주 위험한 일이야. 그들은 닭도 기르지. 사냥하는 것과 닭을 기르는 일 외에 사람들에게는 취미가 없나 봐. 너도 닭을 찾고 있니?”
“아니, 난 친구를 찾고 있어. 그런데 길들여진다는 게 무슨 말이지?”
“그건 너무 잊혀진 말이야. 서로 사이좋게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지.”
“관계를 맺는다는 게 뭔데?”
어린 왕자는 여우가 하는 말들이 신기했습니다.
“너는 내게 있어서 수많은 꼬마들 중 한 명에 지나지 않아. 나 또한 너에게 있어서 수많은 여우들 중 한 마리일 뿐이지. 그러니까 나한테는 네가 꼭 필요하지 않아. 물론 너도 마찬가지로 내가 필요하지 않을 거고. 왜냐 하면 너한테 나는 수많은 여우중 한 마리일 뿐이니까.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가 필요해지는 거야. 너는 내게 있어 이 세상에서 단 한 사람이 되는 거고, 나는 너에게 둘도 없는 여우가 되는거지.”
"이제 알겠다."
어린 왕자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내가 사는 별에는 꽃이 있는데 그 꽃이 나를 길들였나 봐.”
“그랬을지도 모르지. 지구에서는 온갖 일들이 다 일어나니까.”
“그 꽃은 지구에 있는 게 아니야.”
어린 왕자의 대답을 듣고서야 여우는 귀가 솔깃한 모양이었습니다.
“그럼, 다른 별에서 있었던 이야기란 말이야?”
“응, 내가 떠나온 별에 관한 이야기야.”
“그 별에도 사냥꾼이 있니?”
“없어.”
“그거 괜찮은데.... 그럼 닭은?”
“그것도 없어.”
“그렇다면 나는 그 별에 가지 못하겠는걸. 뭐든 완벽한 것은 없다니까.”
여우는 한숨을 쉬면서 다시 말을 이었습니다.
“내 생활은 무척 단조로워. 나는 닭을 쫓고, 사람들은 나를 쫓지. 닭들도 비슷하고 사람들도 비슷해. 그래서 나는 싫증이 나서 좀 지쳤어. 그런데 만일 네가 나를 길들여 준다면 내 생활은 나아질 거야. 다른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 오면 나는 굴 속에 숨지만 네 발자국 소리가 들려 오면 음악을 듣는 듯이 즐거운 마음으로 굴 밖으로 뛰어나올 거야."
여우는 정신 없이 이야기를 계속했습니다.
"저 아래 밀밭이 보이지? 난 빵을 먹지 않으니까 밀은 나한테 아무 소용이 없었어. 그러니까 밀밭을 보아도 내 머리 속에는 떠오르는 게 없단다. 그런 게 난 너무도 슬퍼. 그런데 네 머리는 금빛이구나. 그러니까 네가 나를 길들여 놓으면 정말 근사할 거야. 내가 황금빛 밀밭을 보면 금빛으로 빛나는 네 머리카락이 생각나서 너를 그리워하게 될 거야. 어쩌면 밀밭으로 지나가는 바람 소리조차도 좋아지겠지.”
잠시 말을 멈추고 어린 왕자의 얼굴을 쳐다보던 여우가 말했습니다.
“나를 길들여 줘. 제발.......?”
어린 왕자는 잠시 머뭇거렸습니다.
“그럴께. 그런데 나한테는 시간이 별로 없어. 친구들을 찾아야 하니까.”
“네가 정말 친구를 갖고 싶다면 나를 길들여 봐. 사람들은 이미 길들여진 것밖에는 몰라. 무얼 알 시간이 없어진 거지. 무엇이든지 자기가 길들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제대로 알 수가 없단 말이야. 사람들은 가게에서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들을 사지. 하지만 친구를 파는 가게는 없어. 그래서 사람들은 이제 친구가 없게된 거야. 만약에 네가 친구를 갖기 원한다면 나를 길들이렴."
“내가 뭘 해야 되니?”
어린 왕자는 길들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었습니다.
“우선 참을성이 많아야 해. 처음에는 내게서 좀 떨어져서 풀 위에 그냥 앉아 있어. 내가 곁눈으로 너를 쳐다보더라도 아무 말도 하지 말아야 돼. 말이란 가끔 오해를 낳기도 하니까. 그러면서 매일 조금씩 내게로 다가오는 거야.”
다음 날, 어린 왕자는 다시 여우를 찾아갔습니다.
그러자 여우가 말했습니다.
“언제나 같은 시간에 오는 게 더 효과적이야. 예를 들어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난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행복을 느끼게 되겠지. 그리고 오후 네 시가 되면 난 가슴이 뛰어 안절부절못할 거야.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게 되는 거지. 그런데 네가 아무 때나 불쑥 나타난다면 난 언제쯤 너를 기다려야 할지 모르잖아. 그래서 예의가 필요한 거야 .”
"예의는 또 뭐야?"
어린 왕자는 또다시 물었습니다.
"그것도 사람들에게 너무나 잊혀져 버렸어."
여우가 말했습니다.
“다르게 만드는 거야. 어떤 날이 보통 때의 날들과 다르게 하고, 어떤 시간이 보통 때의 시간들과 다르게 만드는 거지. 나를 쫓아오는 사냥꾼들은 그런 예의라는 게 있어. 예를 들면 사냥꾼은 매주 목요일에는 동네 아가씨들하고 춤을 추지. 그래서 목요일은 아주 즐거운 날이란다. 나는 목요일이면 포도밭까지 산책을 나갈 수 있어. 만약 사냥꾼들이 아무 때나 아가씨들하고 춤을 춘다고 해 봐. 모든 날들이 다 똑같으니 내가 마음껏 쉴 수 있는 날이 없을 거 아니겠어.”
"이렇게해서 어린 왕자는 여우를 길들였습니다.
어린 왕자가 떠날 시간이 가까와 오자 여우는 슬픈 얼굴로 말했습니다.
"네가 떠나면 난 울 것 같아."
"그건 내 탓이 아니야. 난 너를 괴롭힐 생각이 조금도 없었는데 네가 길들여 달라고 했어."
"그래."
"그런데도 넌 울려고 하잖아?"
여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넌 아무것도 얻은 게 없구나."
어린 왕자가 여우에게 말했습니다.
"얻은 게 있어. 밀 빛깔 말이야."
여우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서 장미꽃들을 다시 한 번 봐. 네가 사랑한 장미꽃은 이 세상에 오직 하나뿐이라는 것을 알게 될 거야."
여우는 어린 왕자가 장미꽃을 만나러 간다고 하자 목소리를 낮추어 중얼거렸습니다.
"네가 나한테 작별 인사를 하러 다시 오면 선물로 비밀을 하나 가르쳐 줄게."
어린 왕자는 장미꽃을 만나러 갔습니다.
"너희들은 내 장미꽃하고 달라. 나한테는 너희들이 그냥 피어있는 꽃일 뿐이야. 왜냐 하면 아무도 너희를 길들이지 않았으니까. 여우도 너희와 마찬가지였어. 몇만 마리의 다른 여우와 똑같았지. 그렇지만 난 그 여우를 길들여서 친구가 되었고, 이제 그 여우는 내게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여우가 되었어."
어린 왕자의 말을 들은 장미꽃들은 기분이 상해 어쩔 줄 몰랐습니다.
어린 왕자는 또 이런 말을 했습니다.
"너희들은 예쁘기는 하지만 속이 텅 비었어. 아무도 너희들을 위해 죽어 주지 않으니까 말이야. 물론 내 장미도 지나쳐가는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보일 수 있지. 하지만 내게는 내 장미꽃 한 송이가 너희 모두를 합한 것보다 더 소중해. 왜냐 하면 내가 정성을 들여 가꾼 꽃이니까. 내가 물을 주었고 유리 덮개를 씌우고 바람을 막아 주었어. 나비를 보게 하려고 애벌레 두세 마리만 남기고 벌레도 잡아 주었어. 나는 장미꽃의 불평하는 소리와 자랑하는 소리까지도 들어 주었고 때로는 아무 말도 않고 점잖게 있는 것까지도 지켜봐 주었어. 그 장미꽃은 내 장미꽃이었으니까."
어린 왕자는 장미꽃들과 인사를 하고 다시 여우에게 돌아왔습니다.
"잘 있어."
어린 왕자가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자 여우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습니다.
"잘 가, 어린 왕자. 내가 마지막으로 비밀을 하나 알려 줄게. 이건 아주 간단한 거야. 무엇이든지 마음의 눈으로 볼 때 가장 잘 볼 수 있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안 보이거든."
여우가 이 말을 해 주자 어린 왕자는 잊지 않기 위해 되풀이해서 외쳤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또 있어. 너의 별에 핀 장미꽃이 그토록 소중한 것은 그 꽃을 위해 네가 많은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지. 그래서 네 장미꽃이 그렇게 소중하게 된 거야."
어린 왕자는 여우가 가르쳐 준 말을 계속해서 따라 외웠습니다.
"내가 내 별에 핀 장미꽃을 위해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그 장미꽃이 소중한 거다!"
"사람들은 언제나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어. 하지만 넌 그걸 잊어선 안 돼.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서는 언제나 책임을 져야만 한단다. 너는 네 장미꽃에 대해서 책임이 있어......"
"난 내 장미꽃에 대해서 책임이 있다......."
어린 왕자는 여우의 말을 새겨 두기 위해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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