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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Apr 05, 2013

랭보 - 취한 배

johnalleyne2.jpg




도도한 강물을 따라 내려갈 때, 나는

예인(曳引)자들1이 날 인도하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

떠들썩한 인디언들이 그들을 깃발 기둥에

발가벗겨 묶은 뒤 과녁으로 삼아 버렸다.

 

플랑드르 밀이나 영국 목화를 나르는 나는

선구(船具)2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내 예인자들과 동시에 그 야단법석이 끝나자,

나는 원하는 곳으로 강물 따라 흘러갔다.

 

지난겨울, 물결의 성난 찰랑거림 속으로,

어린아이의 두뇌보다 더 말 안 듣는 나,

나는 달려갔다! 하여 출범한 반도3도 더 기승스러운

혼란을 겪지 않았다.

 

폭풍우가 내 해상(海上)의 각성을 축복했다.

코르크 마개보다 더 가볍게 나는 춤추었다

조난자의 영원한 짐수레꾼이라 불리는 물결 위에서,

열 밤 동안, 등대4의 어리석은 눈을 그리워하지도 않고!

 

신 능금 같은 아이의 살결보다 더 부드럽게,

푸른 바닷물이 내 전나무 선체를 꿰뚫고,

키와 닻을 흩뜨리면서, 나에게서

푸른 술 자국과 토사물5을 씻어 냈다.

 

그때부터, 나는 별들이 우러나는 젖빛6바다의

시에 기꺼이 잠겼다. 푸른 창공을 탐욕스레 보면서.7

바다의 시에는, 넋을 빼앗겨 파랗게 질린 뗏목,

사념에 잠긴 익사자8가 때때로 내려가고,

 

알코올보다 강하고 리라보다 장대한

쓰라린 사랑 적갈색 얼룩이 반짝이는 햇살 아래

헛소리와 느린 리듬 되어 술렁인다! 갑자기

푸르스름한 바다를 물들이면서.9

 

나는 번개로 갈라지는 하늘, 소용돌이와

파랑과 해류를 알고 있다. 나는 저녁을,

비둘기 무리처럼 고양된 새벽을 알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보았다고 믿는 것을 때때로 보았다!

 

나는 낮은 태양을 보았으니, 그것은 신비한 공포로

얼룩져, 아주 옛날 연극의 배우들과 비슷한 긴 보랏빛

응고선(凝固線)들로, 덧문 떨리는 소리를 내며

멀리 굴러가는 물결들을 조명했다!

 

나는 눈부신 눈이 내리는 푸른 밤을 꿈꾸었다,

천천히 바다의 눈들로 올라오는 입맞춤을,

들어 보지 못한 수액들의 순환을,

그리고 노래하는 형광체들의 노랗고 파란 깨어남을!

 

나는 신경질적인 암소 떼들처럼 암초에

부딪히는 파도를, 여러 달 내내 뒤따랐다.

마리아10의 빛나는 발이 콧잔등을 헐떡이는 대양에

처박힐 수 있을 거라는 건 생각도 않고!

 

알다시피 나는 사람의 피부를 한 표범의 눈11들이

꽃들과 뒤섞이는 믿기지 않는 플로리다,

수평선 아래에서 청록 가축 떼12

고삐처럼 묶인 무지개들과 부딪혔다!

 

나는 보았다 거대한 늪이, 리바이어던

한 마리가 골풀 사이에서 온통 썩어 가는 통발이,

잔잔한 가운데 물이 무너져 내리는 곳이,

심연 쪽으로 폭포를 이루는 먼 곳이 술렁이는 것을!

 

빙하, 은빛 태양, 진주모빛 물결, 잉걸불의 하늘!

갈색 만들의 밑바닥에 펼쳐진 보기 흉한 양륙지13,

거기에선 이들이 득실대는 거대한 뱀들이

검은 향기를 내뿜으며 비틀린 나무에서 떨어진다!

 

나는 푸른 물결 무늬의 그 만새어들, 그 황금빛 물고기들,

그 노래하는 물고기들을 어린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으니.

꽃의 거품들은 내 출항14을 가만히 흔들어 주었고

이루 말할 수 없는 바람이 가끔 나에게 날개를 달아 주었다.

 

때때로, 흐느끼면서 내 옆질을 부드럽게 하는 바다가

극지방과 여러 기후대에 싫증 난 순교자인 나를 향해

노란 현창(舷窓)까지 그 어둠의 꽃들15을 올라가게 했고,

나는 무릎 꿇은 여자처럼 가만히 머물렀다 ······

 

섬처럼, 내 가장자리 위 갈색 눈의 욕쟁이 새들

그것들의 구슬픈 울음과 똥을 피하려 몸을 뒤흔들면서.

그리고 나의 연약한 줄들을 가로질러 익사자들이

잠자러 내려갈 때, 거꾸로 항해했다!

 

그런데 나, 작은 만들의 머리카락 아래 길을 잃고,

태풍 때문에 새들 없는 창공16 속으로 던져진 배,

소형 군함과 한자동맹의 범선들이라도 물에 취한

나의 시체를 건져올리지 않았을 나,

 

자유롭게, 담배를 물고, 보랏빛 안개에 싸여 상승하는 나,

훌륭한 시인들에겐 맛 좋은 잼과 같은,

태양의 이끼와 쪽빛 콧물이 있는

붉어 가는 하늘에 벽처럼 구멍을 뚫은 나,

 

7월이 불타는 듯한 폭발 구멍들이 있는 군청빛 하늘을

몽둥이 타작으로 무너지게 했을 때,

전기 궁형 구름들에 얼룩지고 검은 해마들의 호위를

받으며 미친 널판때기처럼 달린 나,

 

베헤모스들의 암내와 깊은 소용돌이의 신음 소리를

오십 해리 밖에서 느끼고는 전율하는 나,

파란 부동 상태17의 영원한 도망자,

나는 옛 난간들의 유럽을 그리워한다!

 

나는 항성의 떼 섬들! 그리고 헛소리하는

하늘이 표류자에게 열려 있는 섬들을 보았다.

—수많은 황금빛 새들이여, 오 미래의 원기18,

네가 잠들고 유배되어 있는 곳은 저 밑바닥 없는 어둠 속인가?

 

그러나, 진실로, 나는 너무나 울었다! 새벽은 가슴을 에는 듯하다.

모든 달이 지긋지긋하고 모든 태양이 가혹하다.

쓰라린 사랑이 나에게 황홀한 무기력을 불어넣었다.

오 내 용골(龍骨)이여 깨져라! 오 나를 바다로 가게하라!19

 

내가 유럽의 물을 원한다면, 그것은

웅크린 아이가 향기로운 황혼 무렵에

슬픔으로 가득 차 5월 나비처럼 연약한

20를 띄우는 검고 차가운 물웅덩이이다.

 

오 파도여, 나는 그대들의 무기력에 젖어,

이제 더 이상 목화 운반선을 바짝 뒤따를 수도,

군기와 삼각기들의 오만을 방해할 수도,

거룻배들의 끔직한 눈 아래에서 항해할 수도 없다.


Arthur Rimbaud (1854 - 1891)






1 랭보가 취한 배이므로, 이들은 랭보에게 이런저런 훈계를 하는 사람들 또는 기성세대나 어른들일 것이다.

2 옷차림이나 다른 여행 물품을 가리킴. 「나의 방랑생활」 참조.

3 대륙에서 떨어져 나간 반도. 소동의 극치일 것이다.

4 큰 초롱이나 뱃머리 등불의 뜻이나 어원적인 의미를 살렸다. 취한 배는 등대에 의해 인도되지 않는 것을 

  유감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자유롭고 싶어 한다.

5 취한 배-랭보의 기본적인 은유 관계에 대한 결정적인 논거.

6 원래는 젖빛의 즙을 함유한.’ 별들과 은하수가 비친 밤바다 풍경. 그러나 물리적인 반영이 아니라 

   화학적인 결합의 이미지이다.

7 이 현재분사의 주어가 바다가 아니라 취한 배-랭보라는 점은 접속사 ‘et’의 위치로 확증된다.

8 취한배가 랭보의 은유이듯 뗏목은 익사자의 은유.

9 사랑, , 알코올은 푸른 바다의 적갈색 얼룩이다.

10 뱃머리 장식으로서의 성모상. 흔히 발치에 등불이 놓인다.

11 표범 가죽의 무늬는 사람의 눈과 비슷한 형태이다.

12 네오 선장의 해저 목장 풍경을 상기시킴.

13 가라앉은 배들을 끌어올려 놓는 곳. 이런 곳이 바다 밑에 있다는 것은 아마 해저 2만리와 관계 있을 것이다.

14 여러 차례 항구를 떠나는 나라는 의미로 보여짐.

15 부서진 파도 거품을 꽃으로 보고 있다. 앞 연의 꽃의 거품들과 동일한 사물을 지칭. 하지만 어둠에 싸여있다.

16 새들이 날기에는 너무 높은 하늘.

17 하늘을 가리킴.

18 전기력 또는 항공기술? 진보의 원동력.

19 이것은 새로운 모험의 희망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침몰하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20 이를테면 종이배.

 


지옥에서 보낸 한철/민음사 



                                          

music/ Jan A. P. Kaczmarek - The Drunken Bo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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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랭보 - 취한 배

    도도한 강물을 따라 내려갈 때, 나는예인(曳引)자들1이 날 인도하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떠들썩한 인디언들이 그들을 깃발 기둥에 발가벗겨 묶은 뒤 과녁으로 삼아 버렸다. 플랑드르 밀이나 영국 목화를 나르는 나는 선구(船具)들2에 전혀 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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